C

blooming (찰리해리)

.노른자 2015. 4. 18. 01:26

'찰리해리 꽃놀이 보내고 싶다~'에서 시작되어 '벚꽃 나무 아래에는 시체가 있다'를 주제로 작이님, 나드님, 나흐트님과 함께 한 전력?입니다 :D















찰리는 이맘때면 늘 혼자 마트에 들려 큰 카트 안에 해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득 실었다. 이것은 그가 항상 하는 일이긴 했지만 오늘의 찰리에겐 조금 특별한 장보기라는 걸 카트 안에 가득 실린 치즈들과 하몽이 말해주었다. 아마 해리에게 돈과 카트를 끌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고 찰리를 위한 장을 보라고 했다면, 해리는 찰리만큼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혹은 간편하게 찰리에게 전화를 걸어 목록을 읊게 했거나. 해리는 찰리의 입맛 같은 것에는 습관적인 관촬 이외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찰리에겐 뚜렷한 취향이 없었고, 있었다 해도 해리가 좋아하는 것들로 자신을 덮는 것에 익숙한 찰리였으니 해리의 무지에 대해선 해리만을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칼로 도마를 내리치는 소리와 기름을 두른 팬을 달구어 조리를 하는 소리의 배경으론 찰리가 흥얼거리는 휘파람이 깔렸다. 준비한 재료들을 트레이에 널고, 차근차근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음식을 조리 해나가는 찰리의 뒷모습은 평소의 그와는 달리 조금은 방정맞은 느낌도 들었다.


누가 봐도 피크닉을 준비하는 찰리는 테이블에 곱게 접어둔 피크닉매트를 기점으로 차곡차곡 자신과 해리를 위한 도시락을 쌌다.


짠 것을 기피하는 해리를 위해 조금 간을 약하게 하고, 느끼한 것을 좋아하는 해리를 위해 이른 시각에 먹기엔 조금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식단을 준비한 찰리는 준비한 도시락 통 중 마지막의 뚜껑을 덮으며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찰리의 앞에서 해리가 섭취한 음식들을 일 년에 한 번 이 날에 맞춰서 잔뜩 만드는 건 피곤했지만 그래도 해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날은 없는 것을 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찰리는 몸에 가득 밴 음식냄새를 지우기 위해 해리 집 2층에 위치한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해리와의 데이트에서 칭찬을 받았던 옷을 꺼내 입었다.


집 밖으로 나간 찰리를 맞이하는 하늘은 빈말이라도 피크닉을 떠나기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그래도 찰리는 날씨가 피크닉의 성사를 결정짓는 게 아니라는 듯 하늘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양 손 가득한 자신의 짐을 조수석에 실었다. 차에 시동을 건 찰리는 설렘을 가득 담아 가속페달에 발을 얹었다.








해리와의 피크닉은 성공 적이었다.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찰리는 가져온 피크닉 매트를 그들이 매년 함께 보낸 벚꽃 나무 아래에 깔았고, 두 차례에 걸쳐 차에서 들고 온 도시락을 피크닉 매트 위에 늘어놨다. 음식을 입으로 옮기는 사람은 없었지만 달콤한 음식 냄새에도 벌레하나 꼬이지 않는 날씨에 기묘함을 느끼며 찰리는 해리의 몸 위에 제 몸을 뉘인 채 이른 새벽부터 요리를 하느라 힘들었던 육신에 휴식을 선사했다.




하늘은 곧 비라도 내릴 듯 먹구름이 가득했지만 찰리와 해리 그 누구도 자리를 정리하자는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는 이는 없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이 찰리의 몸 위로 하나 둘 쌓여서 찰리의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기를 잠시. 찰리는 이내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깨끗한 나이프를 제 오른손에 쥐고 벚꽃 나무 기둥의 뒤로 돌아갔다. 양말은 신은 발 아래에 짖눌린 잔디를 딛고 선 찰리는 기억을 더듬을 것도 없이 익숙한 나무기둥의 표식을 찾아내 한 획을 더 그었다.


해리와 함께 이곳에서 꽃놀이를 한 지 꼬박 삼년. 벚꽃 나무 아래에 해리를 묻은지 삼년째 되는 날이었다.